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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추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후기

by 그냥(Just) 2022. 8. 22.

 

KBS 다큐,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

옷을_위한_지구는_없다_영상

 

* 50분의 길지 않은 영상이니 한 번쯤 시청해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

 


얼마 전에 안 다큐인데, 아껴뒀다 이제야 봤다.

아껴뒀던 건 옷이 사고 싶어지는 충동이 들 때 보기 위해서였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니 이런 영상을 주기적으로 봐야 그나마 소비를 덜하게 된다.

대충 패션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확실히 이렇게 수치화되어서 보니, 와 닿는 무게가 달랐다.

옷을_위한_지구는_없다_메인화면

 

옷이 넘치는 지구, 수거함 속 옷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는 헌 옷 수거함에 옷을 버린다. 사실, 버린다는 자각이 들지 않는다. 막연히 그 옷들이 재활용될 것이라 굳게 착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멀쩡한 새 옷들도 재고가 되어 소각된다는 사실이다. 이미 헌 옷을 수입해가는 나라마저도 옷이 넘치고 있다. 소가 섬유 조각을 먹이 삼아 살아가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다큐_영상_속_섬유천을_먹고_있는_소

 

 

인구수 28위, 헌 옷 수출액은 5위의 한국

 

또 충격적이면서도 납득할 수 있었던 건, 한국의 옷 소비량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고 의류 수출액 순위였다. 인구수가 28위의 우리나라가 수출액은 5위라니. 수치로 보면 충격적이긴 하지만 한국 문화를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납득이 되어있다. 우리나라는 옷을 잘 입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 영광의 뒷 면이라 할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의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외모지상주의적 생각이 팽배해졌다. 외모가 경쟁력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닌 어느덧 사회적 정서로 깔린 듯하다. 물론, 다른 나라에도 그런 부분이 없다 할 수 없지만,  한국은 유독 다른 이의 외향에 가혹하리만큼 검열이 높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다큐_영상_속_중고의류_수출액_순위_그래프

 

 

재활용 안될까요?

 

또 다른 문제는 옷의 재질에 있다. 옛날엔 면을 사용하여 옷을 만들어 입었지만, 요즘은 합성 플라스틱 섬유의 발전으로 저렴한 값에 질 좋은 옷들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익히 우리가 아는 플라스틱의 문제와 다를 게 없다. 이 플라스틱으로 만든 옷들은 잘 썩지 않는다는 것. 또한 이 플라스틱 옷들을 세탁할 때마다 발생하는 미세 플라스틱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섬유로 만든 옷 또한, 결국 문제 해결에 답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다큐_영상_속_1980년대_1인당_옷_구매량_현재의_5/1

 

 

엄청난 패션 산업의 규모

 

또 수치화되어서 놀랐던 부분은 패션 산업의 온실가스였다. 전 세계 선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보다 많다니. 생각해보면 옷 하나를 만드는 데 그렇게 많은 물과 환경파괴가 이루어지는 데에 비해 우리는 너무 쉽게 옷을 공급받고 있다. 나만해도 옷장에 옷이 과하게 많다는 걸 고백하는 바이다.

다큐_영상_속_선박이미지

 

이미 개성이 되어버린 패션, 나를 꾸미는 게 경쟁력?

 

나도 가족도 모두 옷이 많다. 이미 충분한 옷들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나도 마음에 드는 옷들을 보면 소비 욕구가 차오른다. 재활용으로 지속 가능한 시점은 이미 넘어섰음을 알고 있음에도, 옷장을 보면 입을 옷이 없다고 한탄한다. 나는 그렇게 낙관적인 사람은 아니기에, 외모가 경쟁력이 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 분위기가 너무 과열되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외모를 가꾸기 위해, 자기 관리라는 명목 하에 자신의 건강을 망치는 사례들은 수없이 많을 정도로 우리는 이미 외모에 중독되었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와 더불어 환경과 소비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자원은 무한하지 않기에. 나는 요즘 좋아하던 액세서리와 색조 화장품을 사지 않은지 2년 반 정도 됐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가치관의 변화도 있지만, 내가 하는 소비의 방식으론 삶을 지속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기간 동안 왜인지 옷만큼은 자제가 잘 되지 않았다. 일단 내가 선택한 방식은 오래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의 옷을 사는 것이었다. 최근의 옷들은 전부 유행을 타지 않을 단순한 디자인의 옷이다. 나는 패스트 패션 산업을 사랑했다. 서민들에게, 나에게 스파 브랜드들의 존재는 굉장히 든든했다. 유행 타는 디자인들을 비교적 쉽게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고, 그 재미가 참 좋았다. 그러기에 이제와 환경에 관심을 갖기에 수치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수치스러움을 맞이하면서 나는 계속 관심 갖고, 노력할 것이다. 관심이 곧 행동이므로. 이렇게 글을 써 남기는 이유도 그것이다. 지금 이렇게 관심을 갖으므로 나는 지금의 소비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듯이,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다. 훗날,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 모르지만 수치스럽지 않은, 적어도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사는 내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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